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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미가서1장1-9절
제목: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9.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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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하는데… 왜 고통이 내게 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성경을 들여다보면, 성경속에 나와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신앙의 길 위에도 고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기 전 두 인물을 먼저 떠올리며 말씀을 나누고저 합니다.
첫 번째 인물은 찰스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의 황태자’라 불릴 만큼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지만, 그는 평생 통풍과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어느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울증과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에 설교가 비극이 되어버렸다.” 그날 약을 두 배로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C.S. 루이스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 그는, 말년에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슬픔은 두려움과 비슷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침을 계속 삼키게 되었다.”라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을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고통은 그들의 삶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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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미가서 1장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고통도, 이 말씀 안에서 답을 얻을수 있습니다.
미가서1장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이상을 본 것이라.” (미가 1:1)
미가 선지자는 남유다 출신의 무명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부터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그리고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고통의 뿌리에 대한 진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모레셋은 당시 유다 지역의 작은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말 그대로 '변두리'입니다. 그런 시골 출신의 무명 선지자 미가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 즉 남북 왕국 전체를 향한 심판과 회복의 말씀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전환문>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나요?
대지1 > 낮은 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1절).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의 기준은 결코 세상의 권력, 학벌, 지위, 배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 겸손한 자,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십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이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미가는 유다의 세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요담은 비교적 선한 왕이었으나, 백성들의 죄악은 방치했습니다. 아하스는 우상숭배를 조장하며 북이스라엘을 따라갔고,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나라의 영적 상태는 여전히 깊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혼란과 타락의 시기에, 하나님은 유다 왕실이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중심을 향해 있었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심령의 상태를 보셨습니다.
그 진리를 성경은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사야서 66장 2절을 함께 보십시오. “내가 권고할 자는 곧 심령이 가난하고 마음에 통회하며 내 말을 경외하는 자니라.”
하나님은 마음이 낮아진 자,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가 바로 미가 선지자입니다. 모레셋 출신 미가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시골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겸손한 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이 원리를 따라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스펙보다 낮은 무릎을 기뻐하십니다. 많은 언변보다 중심의 정직함을 보십니다. 외적인 성공보다 말씀 앞에 떨며 반응하는 자,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 예화 –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조선교회는 여러 면에서 형식과 제도는 갖추어졌지만, 영적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평양 장대현교회의 한 장로가 기도회 도중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합니다.
그 고백의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함께 통회하고 눈물로 회개하며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화려한 강사도, 유명한 목사도 아닌, 한 겸손한 장로의 회개가 성령의 불길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고백을 통해, 모레셋 같은 장소에서도 역사하십니다.
👉 적용질문?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낮추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있는가? 혹시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와 시선을 더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하는 여러분,
모레셋의 무명 선지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겸손한 마음을 갖은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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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문> 북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결과는 어떻습니까?
대지2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5-7절).
본문5-7절 함께 읽겠습니다.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임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전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허물, 이스라엘 족속의 죄, 하나님은 두 도시를 지목하십니다.
첫째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둘째는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도시가, 이제는 우상 숭배의 산당과 같은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율법이 낭독되고, 제사가 드려지고,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하던 곳입니다. 그러나 그 영적 중심이 변질되었을 때, 하나님은 예외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조차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사마리아를 멸망시키며 그곳의 우상을 깨뜨릴 것이며…” (6절)
“이는 상처가 치유할 수 없이 깊고, 유다에까지 이를 것이며, 내 백성의 성문 예루살렘에까지 미칠 것임이니라.” (9절)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경고에 그치지 않습니다.
죄의 결과는 고통이며, 그 상처는 깊고 치유가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시작된 영적 타락은 결국 예루살렘에까지 파고들었고,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사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 율법이 낭독되는 장소라 할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중심을 차지하면 그곳은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와 아직사이’에서 우리는 세상에 몸을 담고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세상에 몸을 담고 있으니 세상에 물들어 살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되지 않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그런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한 것을 보면서 그것을 따라하고 있는 모습의 말씀 아닌가요? 진정한 우리의 성전, 우리의 거룩한 삶은 무엇인가요? 내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고 있습니까?
📌 예화 – 어느 집사님이 새 차를 장만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예배보다 세차가 우선이 되고, 주일예배 대신 장거리 드라이브를 계획하게 되었고, 신앙생활 예배대신 자동차에 더 애착을 갖는 시간과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에 있어서, 그 차는 작은 금송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은 단지 불상이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중심에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며, 그것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렸습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의 예루살렘, 즉 우리 마음의 중심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예배하고, 말씀을 읽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듯하지만, 정작 그 마음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 세상적 성공이 자리를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 적용질문: 내 마음속 예루살렘에는 어떤 우상이 자리하고 있는가?
나는 예배의 형식은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등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루살렘조차 예외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누구도, 어떤 장소도, 죄 앞에서는 면죄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기 위한 부르심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산당이 되었다." 그 선언 속에는 슬픔과 아픔, 그러나 동시에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키면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우리 안의 예루살렘을 점검합시다. 은밀한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중심에 모시는 그 회복의 길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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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전환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미가는 말씀의 심판을 전하고 어떻게 하나요?
대지3 > 그는 애통했습니다(8절).
본문: 미가 1장 8절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니” (미가 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을 눈여겨보십시오. 선지자 미가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고 나서, 기뻐하거나 의기양양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옷을 찢고, 거리로 뛰쳐나가, 들개처럼, 타조처럼,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습니다. 애통했습니다.
당시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를 다닌다는 것은 수치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한다’는 표현은 당시 고대 근동의 장례문화에서 깊은 슬픔과 절망을 표현할 때 쓰이던 말입니다.
미가는 지금, 하나님의 마음으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을 위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보고 정죄하지 않고, 애통합니다.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미가는 자기 백성의 죄를 보고 손가락질 하지 않고, 가슴을 찢으며 같이 울고 있습니다. 그는 단지 심판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픔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적용>
저와 여러분 미가선지자의 마음을 우리 안에 갖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 “너는 그 죄 앞에서 울었느냐?”
👉 “너는 그 영혼의 멸망을 보고 애통하였느냐?”
📌 예화 – 어느 날, 청소년 경찰서에 잡혀온 중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남의 물건을 흠치다가 잡혀왔습니다. 경찰서 안에 앉아있는 아이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고, 그 앞에 경찰도 냉냉했습니다. 아이가 경찰에 잡혀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어머니가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서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를 보고 크게 울었습니다.
“내가 널 잘못 키웠다 미얀하다 미얀하다 내가 정말 잘못했다. 경찰관에게 어머니는 제가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또 말합니다. 내가 미얀하다. 미얀하다.”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눈물은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렸고, 결국 그는 어머님의 모습에 깨닫고 돌이켜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죄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애통은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정의를 외치되, 그 정의의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과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 적용질문
나는 누군가의 죄를 볼 때, 미가처럼 울고 있는가? 아니면, 비판과 우월감으로 정죄하고 있는가?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조차 죄에 물들었기에 그곳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회개하는 자는 예외가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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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말씀드린 두명의 인물 스펄전 목사님과 루이스~역시 하나님의 경외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깊은 우울증과 병약함 속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말씀을 붙들고 강단에 섰습니다. 그 말씀이 그에게 처음에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쓰러지면서도 설교했고, 눈물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C.S.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분을 기다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와 겸손으로 나아갈 때, 그 고통은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통로가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쓰러질 때, 다시 일으키십니다. 눈물로 회개할 때, 용서의 손길로 안아주십니다.
👉 적용질문
나는 지금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있는가?
이 아픔 속에서, 나는 회개와 변화로 나아가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는 예외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한 심판의 칼을 거두시고, 은혜의 품으로 끌어안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가 정죄가 아닌 애통으로, 무관심이 아닌 회개로 나아가 한주간도 승리하는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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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단기도문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의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 앞에 섭니다. 예루살렘도 예외가 아니었듯, 저희 역시 예외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겉으로는 예배하고, 종교적인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마음 한복판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저희의 마음속 예루살렘을 살펴 주옵소서. 성전의 모양은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공간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형식만 남고, 정작 중심은 무너져 있지 않도록 말씀으로 저희를 붙들어 주소서.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합니다. 주여~
기도문>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미가 선지자처럼 애통하는 심령을 허락하옵소서.
세상의 죄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가슴으로 울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지금 우리의 고통이 있다면, 그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고통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회개로 이끄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정죄가 아닌 회복, 멸망이 아닌 은혜를 선택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는 자가 되게 하시고,
회개하는 자에게 예외 없는 용서와 회복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하심과 성령 하나님의 위로하시고 감동 감화 교통하심이, 오늘도 말씀 앞에 자신의 예루살렘을 돌아보며 정죄가 아닌 애통의 심령으로, 심판이 아닌 회개의 길로 나아가기를 결단하는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 그들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실찌어다. 아멘.